Q. 작가님에게 나무란 어떤 존재인가요? 나무를 다루며 느끼는 감정이나 그 안에서 발견한 철학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에게 나무는 자연 그 자체이면서도 사람처럼 느껴지는 존재입니다. 나무를 깎을 때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듯, 그 나무가 살아온 세월과 흔적을 고요히 마주하게 됩니다. 나무는 자라온 방향에 따라 고유한 결을 지니는데, 그 결을 거스르면 나무가 뜯겨나가거나 칼이 상하죠. 그래서 저는 결을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형태를 다듬는데, 그 과정이 마치 나무의 생을 어루만지며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렇게 작업하다 보면 인생 역시 나무의 결처럼 순결과 엇결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억지로 맞추기보다 내 안의 결을 잘 들여다보고, 그 흐름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Q. 나무를 고르고, 깎고, 오일을 바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몰입의 순간이 있으신가요?
나무가 제 말을 잘 들어주고, 제 몸의 일부를 조금씩 덜어내어 줄 때 교감하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나무를 한꺼번에 쪼개듯이 과하게 깎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나무의 생을 무시하는 것 같거든요. ‘네가 살아온 생을 내가 톺아볼게’ 하는 마음으로 결을 따라 천천히 깎을 때 진짜 교감이 일어나요. 그 교감이 깊어질수록 몰입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Q. 완성된 작품을 마주했을 때, ‘이건 좋은 작품이다’라고 느끼는 기준이나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만든이의 의도가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고, 나무 본연의 멋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을 때 좋은 작품이라고 느껴요. 특히 그 나무가 가진 고유한 매력이 유일무이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마치 원래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단순하고 소박하게 완성되었을 때 가장 만족스러워요.
Q. 작업과 일상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나요? 평소에도 차를 즐겨 마신다고 들었는데, 다구를 만드는 일이 작가님의 일상이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차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제 취향이 점점 더 명확해졌어요. 아름다운 다구는 많지만 제 마음을 사로잡는 건 분명 따로 있더라고요. 좋아하는 다완이나 개완, 다관을 감상하고 직접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작업에 대한 영감이 떠올라요. 차를 마시는 시간은 제 취향과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에요. 작업 사이의 쉼표이자, 새로운 영감을 얻는 중요한 시간이죠. 제가 만든 다구들은 흙과 돌, 이끼, 숲을 닮아 있어서 차를 마실 때면 제 책상 위에 작은 자연을 펼쳐두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Q. 작가님의 다구가 누군가의 생활 속에서 실제로 사용될 때, 그 모습을 상상하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제 작업이 누군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오랜 시간 함께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이에요. 수십 년 자란 나무와 제 에너지가 어우러져 그분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제 작품을 신중히 선택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함을 느껴요.
Q. 요즘 집중하고 계신 작업 시리즈나 앞으로 계획 중인 새로운 방향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이번 티하우스 하다 전시에서는 나무가 가진 본연의 얼굴을 살리고 싶어 나무껍질 부분을 포함한 도구들을 만들었어요. 또 자연스러운 낡음을 표현하기 위해 국산 벚나무에 에보나이징 기법을 적용해보았습니다. 현재, 다양한 마감법으로 목재의 톤을 달리 표현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형태적으로는 자연스럽고 불완전한 단순함을 추구하고 있어요. 이런 형태들은 만든이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진 듯한데요. 마치 눈을 감고 그려도, 눈을 뜨고 정교하게 그려도 비슷한 선이 나오는 것처럼요. 엣지는 더욱 얇고 단단하게 다듬으며 손맛이 살아있는 작업을 하고 있고, 지금은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듯 작업하고 있습니다.